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와 미국 시사주간 <타임> 등이 창조론자들의 요구로 한국 과학교과서에서 진화론을 설명하는 시조새 등이 삭제된다는 기사를 잇따라 내보내 파문을 일으켰다. 진화학계에서는 창조론자들의 요구가 학문적으로 맞지 않다고 반박하며 삭제에 반대하는 청원을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유명 과학저널 <네이처>가 지난 5일 ‘한국, 창조론자들 요구에 항복하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뒤, 외국에서 우려하는 댓글들이 잇따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여러 차례 우리나라 교육을 모범사례로 추켜왔던 터여서 “미국이 커져서 이동했나보다” 등 빈정 섞인 글들도 눈에 띄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종교적 배경을 가진 일부 학자들이 진화론을 부정하는 주장을 내놓은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성경을 근거로 생명의 발달을 설명하는 ‘창조과학’을 교과서로 승인해달라고 요구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진화론 반대 주장이 정부 차원에서 받아들여진 것은 처음이다. 가뜩이나 종교 편향으로 구설에 오른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라 시선이 곱지 않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청원을 한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교진추)는 청원에서 7종의 고교 과학교과서들 중 일부가 ‘시조새는 파충류로부터 조류로 이행하는 중간종’이라고 단정적으로 표현해 최신 학계의 흐름을 반영하지 않고 있어 삭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진추는 “화석기록에 시조새를 포함해 어떤 중간종도 발견되지 않았고, 스티븐 제이 굴드 등 저명한 학자들이 이에 동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삭제가 어렵다면 “1984년에 열린 국제시조새학술회의가 시조새를 ‘멸종한 조류’로 공식 선언한 사실, 시조새 화석에 대한 조작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 등을 함께 소개해야 한다고 교진추는 덧붙였다.
교과부를 통해 청원 내용을 전달받은 교과서 발행사들이 시조새 관련 내용과 사진을 삭제하거나 수정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지자 진화학계에서는 “교진추의 청원 내용 자체가 학계의 주장과 학문의 흐름을 왜곡한 것”이라며 과학교과서의 시조새 삭제를 반대하는 청원을 잇따라 접수해 교진추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굴드가 잘못 인용된 점도 지적된다. 굴드는 진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급속히 변화하는 시기와 변동이 거의 없는 안정기가 구분된다는 ‘단속평형설’을 펴면서 안정기를 표현하기 위해 ‘종의 정지 현상’을 얘기했는데 마치 굴드가 중간종을 부정한 것처럼 왜곡했다는 것이다. 교진추가 시조새 화석에 대한 조작 논란의 근거로 든 영국 프레드 호일 등의 주장 또한 사진만을 보고 내린 결론으로 실제 화석 학자들이 재분석해 위조가 아니라고 밝힌 사실을 들어 반박했다.
교진추는 올 3월 청원에서는 “일부 교과서가 싣고 있는, 말의 몸집이 커지고 발가락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설명과 화석계열 그림은 미국 교과서에서도 삭제되고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서도 철거됐다”며 “말의 점진적 진화계열은 유물론에 입각한 무신론 적 자연주의인 신다윈주의에 근거한 것으로 학생들의 가치관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교진추는 또 “굴드 등 학자들이 말의 점진 진화는 학술적으로 불가능하며 상상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고 덧붙였다.